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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빈 잔이 채워질 때, 장재형목사(Olivet University)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는 뼈만 남은 물고기를 끌고 항구로 돌아오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며칠 밤낮을 사투 끝에 잡은 거대한 청새치는 상어 떼의 습격으로 살점이 다 뜯겨나가고 맙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는 비장한 독백이 흐르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앙상한 뼈, 즉 허무입니다. 인생을 '고해(苦海, 쓴 바다)'라고 칭했던 옛 선인들의 표현처럼, 우리의 삶은 거친 파도와 싸우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는 쓸쓸한 항해를 닮았습니다. 화려하게 시작된 혼인 잔치라도 시간이 흐르면 포도주가 바닥을 드러내듯, 인생의 기쁨과 활력은 필연적으로 소진되기 마련입니다.

장재형 목사(Olivet University)는 요한복음 2장의 가나 혼인잔치 사건을 조명하며, 바로 이 '결핍의 순간'에 주목합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단순한 난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짙은 어둠이자,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인 절망을 상징합니다. 철학이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전도서 기자가 "모든 것이 헛되다"고 탄식한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 절망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서사를 시작합니다.

고해(苦海)의 끝자락, 빈 잔을 마주하는 순간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누구나 '포도주가 떨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젊음의 열정은 식어가고, 육체의 강건함은 무너지며, 사랑하던 이들은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납니다. 장재형 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전도서 12장을 인용하며, 원욕이 끊어지고 먹는 것조차 맛을 잃어가는 노년의 고독을 가감 없이 묘사합니다. 이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실존적 운명입니다. 세상의 이치대로라면, 좋은 포도주는 처음에 나오고 나중에는 낮은 것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즐거움 뒤에 허무가 오고, 생명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자연의 순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운명론적 비관주의를 거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서는 그 순서가 뒤바뀝니다. 주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시며, 인간의 시간이 끝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여십니다. 세상은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는 열차를 타고 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그 어둠이 끝이 아니라 더 밝은 빛을 향한 터널임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신학적 통찰입니다.

아귀까지 채운 순종, 기적을 빚어내는 침묵의 시간

그렇다면 이 놀라운 반전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기적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철저한 순종과 채움의 과정 속에서 태동합니다. 본문에서 하인들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서 영적인 양적 증대가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깊은 진리를 설파합니다. 기도는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눈물로 채운 기도의 항아리, 땀 흘려 헌신한 사명의 항아리가 차고 넘칠 때, 비로소 물은 포도주로 변하는 변혁(Transformation)을 맞이합니다.

연회장은 포도주의 출처를 알지 못했지만, 물 떠온 하인들은 알았습니다. 이것은 깊은 신앙의 비밀입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묵묵히 기도의 물을 길어 올린 자, 절망의 상황에서도 순종으로 빈 항아리를 채운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은밀한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즉각적인 보상과 결과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침묵 속에서 성실하게 물을 붓는 시간들을 통해 무르익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영원한 희망의 서곡

가나의 기적이 주는 가장 큰 위로는 '나중'에 대한 약속입니다. 연회장은 신랑을 불러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고 감탄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잔치의 흥을 돋우는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사적 예언입니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듯, 예수 믿는 자의 인생은 갈수록 좋아지는 '점층적인 영광'의 드라마입니다. 세상의 잔치는 갈수록 시들해지고 묽어지지만, 주님과 함께하는 인생 잔치는 시간이 갈수록 더 깊고 향기로운 포도주를 내어놓습니다.

우리는 썩어질 육체를 입고 살아가지만, 동시에 썩지 아니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삼키지 못하는 것은, 부활의 주님께서 죽음 너머에 '가장 좋은 포도주'인 천국 잔치를 예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비극적인 종말이 아니라, 진정한 축제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물과 같다면, 장차 올 하나님 나라는 극상품 포도주와 같습니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항아리는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습니까? 허무하게 사라질 세상의 욕망입니까, 아니면 영원히 변치 않을 복음의 진리입니까?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위로를 파는 곳이 아니라, 절망의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에게 "죽어도 산다"는 부활의 깃발을 보여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지금 인생의 포도주가 떨어져 곤고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낙심하지 마십시오. 빈 항아리는 곧 기적의 그릇이 될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맹물 같은 인생은 그 어떤 것보다 붉고 진한, 향기로운 포도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 변화의 주체이신 예수를 믿고, 오늘 내게 주어진 항아리를 기도로 채우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날마다 경험해야 할 기적의 시작입니다.